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8. 18世 〉24. <부정공>수호재기(守好齋記)휘상기(諱相淇)
1. 문헌 목록 〉18. 18世 〉26. <부정공>미호공휘상찬유사(嵋湖公諱相纘遺事)
1. 문헌 목록 > 18. 18世 >  
25.<부정공>호은공휘병겸유사(湖隱公諱秉謙遺事)
湖隱公諱秉謙遺事 公諱秉謙字克恭自號湖隱統制公諱爾重玄孫也 英宗丙寅生資禀英異粹然近仁及長有偉人風儀一生需用以小學立根基十一歲失所怙執喪如成人奉偏慈志體具養辛壬之誣尚忍言哉朝家褒 贈之典不無異同以統制公之當日秉義猶不見錄是以早遊京師出入訟冤於公卿間如金永安趙淳趙尚書鎭寬莫不禮遇又遊宋性潭門契許甚密惓惓之意發於書尺時從叔肅川公方出仕路公喜曰親老身單最難曠側而叔既出身褒先之事自是有托矣嘗戾落忽汲汲治裝歸覲則母夫人之患痢適數日見者皆以庾孱陵心驚去官比之以統制公履歷諸閫司命旂帛作屏以壽世珍蓄之意銘其後當時章甫屢薦行義於營邑竟未採聞人皆惜之 호은공휘병겸유사(湖隱公諱秉謙遺事) 공의 휘는 병겸(秉謙)이요, 자는 극공(克恭)이며, 호은(湖隱)은 자호이고 통제공 이중(爾重)의 현손이시다. 영종(英宗) 병인년(一三四六)에 출생하여 품성이 탁이(卓異)하고 순전하여 어진 이에 가깝더니 장성하매 거룩한 사람의 풍의(風儀)가 있고 일생 용공(用工)이 「소학」으로써 근본을 삼았다. 十一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어른같이 집상하고 자친을 받들어 뜻과 몸을 함께 길렀다. 신임(辛壬)의 간사한 속임은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나라에서 포양증이(褒揚贈貤)한 은전이 틀림없으나 통제공의 당일에 잡은 의절이 오히려 기록을 보지 못하였다. 이로써 일찍이 경사(京師)에 놀아 공경(公卿) 간에 김영안 조순(金永安趙淳)과 조상서 진관(趙尚書鎭寬) 같은 사람에게 출입하여 원통함을 호소하니 예로써 대우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또 송성담(宋性潭) 문하에 종유하여 친밀한 교계로 정성스러운 뜻이 편지와 문자에 담기었다. 때에 종숙 숙천공(肅川公)이 바야흐로 벼슬길에 나가니 공이 기뻐하여 가로되 「어버이는 늙었고 몸은 독신이라 곁을 떠나기가 가장 어려운데 아저씨가 이미 출신하였으니 포선(褒先)할 일은 이로부터 부탁할 곳이 있다,」 하였다. 일찍 서울에 이르렀다가 문득 바삐 서둘러 집에 돌아와 보니 모부인이 이질을 앓은 지가 수일이라 보는 자가 다 유잔릉(庾孱陵)이 경심하여 벼슬을 버린 고사로써 비유하였다. 통제공의 이력과 명령을 받든 쌍룡기며 죽백을 병풍을 만들어 영원히 세전할 뜻으로 그 후면에 명을 붙였다. 당시 선비들이 자주 행의를 영읍(營邑)에 천거하였으나 마침내 채문하지 못하니 사람이 다 애석히 여기었다.
 
1. 문헌 목록 〉18. 18世 〉24. <부정공>수호재기(守好齋記)휘상기(諱相淇)
1. 문헌 목록 〉18. 18世 〉26. <부정공>미호공휘상찬유사(嵋湖公諱相纘遺事)